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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
21세기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개인'이다. 서양 사회에서 '개인의 시대'가 열린 것은 근대 시민혁명 이후였다. 근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출발점은 모두 개인주의였다. 양도할 수 없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을 이뤘다면, 노동시장에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개인의 노동력은 자본주의의 초석을 제공했다. 이러한 개인이 누구의 저기 간섭에서도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누리려는 것이 근대 개인주의 문화였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시대는 1980년대 후반 열린 민주화 시대에 시작됐다. '한국적 개인주의'를 이끈 세대는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신세대'였다. 1980년대에 청소년 시절을 보낸 신세대의 특징은 당시 신세대론을 앞세운 청년세대가 내놓 한국sc은행 은 책 제목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1993)에서 선명히 드러났다. 남들이 뭐라 해도 자기 삶을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는 것이 한국적 개인주의의 세계관이었다.
이후 개인주의의 성장은 거침없었다. 신세대의 뒤를 잇는 MZ세대에게 개인주의 성향은 더욱 강화됐다. 고독을 감수할지언정 자기만의 생활을 소중히 하는 게 기초생활수급자정부학자금대출 MZ세대의 특징이다. 최근 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혁명은 이런 개인의 취향과 소비를 업그레이드해 왔다.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기술'은 바로 이를 주목한 개념이다. 초개인화를 적극적으로 알려온 것은 마케팅 등 경영학이지만, 이 초개인화에 담긴 문화적 뉴노멀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2금융권대출조건 초개인화의 경영학기술은 사회와 함께 발전한다. 칼을 만들어 요리에 쓸지 전쟁에 쓸지는 사회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AI도 마찬가지다. AI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기던 학습·지각·추리 등이 가능한 기계다. AI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AI가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인간이 AI를 어떻게 통제할지를 놓고 지난 몇 년간 많은 토론이 진행됐 금융권 다.
AI와 개인주의가 만나 가능해진 것의 하나가 앞서 말한 초개인화 기술이다. 우리 사회에서 초개인화 기술을 알린 것은 소비자경제학자 김난도 등이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20'(2019)이다. 이들에 따르면,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해 고객의 니즈를 예측함으로써 맞춤형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초개인화 기술이다.
초개인화 기술은 개인화 마케팅이 진화한 형태다. AI라는 기술을 만나기 전 개인화 마케팅이 바깥에서 개인에 접근했다면, 초개인화 마케팅은 개인 자체에서 출발한다. 개인화가 나이·성별·직업·거주지 등 군집적 특성을 마케팅에 활용한다면, 초개인화는 개인이 제공한 빅데이터와 AI의 알고리즘 분석 그리고 소셜미디어 등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 개인의 다양하고 내밀한 니즈를 충족한다.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나 각종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 당신이라면 이런 걸 좋아할 것 같다는 추천을 받는 것이 이제 흔한 일이 됐다.
‘트렌드 코리아 2020'에 따르면, 초개인화 마케팅을 선구적으로 시도한 기업이 플랫폼 비즈니스를 대표해 온 아마존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고객 경험'의 네 단계 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인간이 품은 본능에 대한 응답이 첫 번째 전략이라면, 기술의 진화가 부과하는 문제와 스트레스 해결이 두 번째 전략이다. 세 번째 전략은 빅데이터와 AI에 기반해 실시간으로 소비자 개개인의 니즈에 맞춰 일대일 마케팅을 실행하는 것이고, 네 번째 전략은 고객이 소비한다고 생각하기보다 필요한 물건을 구매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초개인화 마케팅 사례는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내 음원 플랫폼이다. 온라인상에서 유튜브 뮤직, 스포티파이, 멜론(카카오엔터테인먼트), 지니뮤직(KT), 플로(드림어스컴퍼니) 등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러한 경쟁에서 초개인화 기술은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멜론은 사용자가 한 곡을 선택하면 비슷한 분위기의 곡이 이어지는 AI 기반 '믹스업' 서비스를, 플로는 AI 기술과 데이터에 기반해 사용자가 원하는 무드의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한다.
멜론이 제공하는 신규 음악감상 서비스 ‘믹스업(MIX UP)’과 ‘뮤직웨이브(Music Wave)’(위). 드림어스컴퍼니의 음악 플랫폼 플로(FLO)는 플레이리스트를 영상과 함께 짧게 미리 듣고 고를 수 있는 ‘무드(Moood:)’ 서비스를 신설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플로]
2024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소비자가전전시회) 2024'의 핵심 키워드도 AI와 초개인화였다. 이 전시회에서 특히 이목을 끈 것은 모빌리티의 초개인화다. 예를 들어, 독일 폴크스바겐은 'AI 비서' 기술 개발을 발표했고, 미국 아마존은 개인 맞춤형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였다. 사용자의 데이터와 운전 스타일 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는 AI를 통한 초개인화 기술의 또 다른 진화를 보여준다.
폴크스바겐(Volkswagen)과 세렌스(Cerence Inc.)는 2024년 1월 8일 ‘CES 2024’의 공동 언론 행사에서 운전자에게 차세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도록 설계된 최초의 생성적 AI 기반 기술을 공개했다. 폴크스바겐 유튜브 캡처
마케터 최연미의 'AI 마케팅 인사이트'(2024)는 AI가 마케팅 패러다임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다고 진단한다. 최연미에 따르면, 초개인화는 구매 데이터 같은 과거의 데이터베이스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용자 개인의 소셜미디어 활동, 감정, 숨겨진 요구, 복합적 라이프스타일 등을 섬세하게 읽고, 사용자가 미처 깨닫기 전에 원하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초개인화는 시간·장소·상황에 따라 다양한 자아와 사회적 역할을 드러내는 소비자의 '멀티 페르소나'까지 공략한다.
이런 초개인화 시대의 도래에 담긴 의미는 두 가지다. 하나가 보이지 않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나를 이루는 '멀티 페르소나', 즉 '복수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일찍이 사회학자 스콧 래시는 인간이 갖는 복수의 주체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선보인 바 있다. 래시에 따르면 인간은 '자아(ego)로서의 나' '욕망(desire)으로서의 나' '우리(we)로서의 나'로 존재한다. 개인은 이성적 존재이자 감정적 존재이고, 또한 공동체의 구성원을 이루는 존재라는 것이다.
돌아보면,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실존적 개인'에서 '복합적 개인'으로 변화해 왔다. 1988년 '시인과 촌장'이라는 듀엣 그룹의 멤버 하덕규는 '가시나무'라는 가요를 발표한 바 있다. 이 곡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지만,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로 시작하는 첫 구절은 작지 않은 울림을 품고 있다. 초개인화 기술은 바로 그 '복수의 정체성'에 주목하고, AI를 통해 인간에게 내재한 '정체성들'을 현실화한다고 볼 수 있다.
초개인화 시대는 앞서 말했듯 복수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시대다. 주목할 것은 이 복수의 정체성이 고정돼 있지 않고 계속 유동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개인은 이제 자아·욕망·공동체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이 '존재들'은 사회변동에 따라 계속 변화하기 마련이다. 복합적인 정체성과 유동하는 정체성은 초개인화 시대의 문화적 풍경이라 할 만하다.
초개인화의 사회학초개인화에 대한 경영학적 발견과 더불어 생각해 볼 것은 사회학적 시선이다. 경영학적 발견이 초개인화로 드러나는 복합적 정체성에 주목한다면, 사회학적 시선은 초개인화에 담긴 변화하는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가 아닐 수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 시대가 '고체 현대'에서 '액체 현대'로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고체 현대가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회라면, 액체 현대는 모든 견고한 것이 녹아내려 움직이는, 개인주의가 더욱 발전된 사회를 말한다. 유동하는 사회에서는 불확실성만이 유일한 확실성으로 존재한다.
2020년대 현재, AI를 위시한 과학기술 혁명은 이중적 결과를 낳고 있다. 사회 측면에서 정보기술에 기반한 네트워크 사회의 진전은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사회로 인류를 이끌고 있다. 한편 개인 측면에서 자아 정체성이라는 우주는 초개인화 기술이 드러내듯 끝없이 확장하는 동시에, 액체 현대 이론이 보여주듯 모든 것은 흘러가고 파편화된다. AI가 선사하는 '멋진 신세계'와 불확실성이 낳고 있는 '불안의 사회'는 21세기 개인주의가 마주한 두 현실이다.
사회학적 시선에서 고체 현대가 개인화 시대라면, 액체 현대는 초개인화 시대다. 개인화 시대는 계획성과 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이고, 초개인화 시대는 우연성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다. 이런 개인화 시대와 초개인화 시대에는 바우만이 지적한 '정원사'의 삶과 '사냥꾼'의 삶이 각각 대응한다.
바우만에 따르면, 정원사는 20세기적 인간상이었다. 사회는 하나의 정원이고, 개인은 그 정원을 자신의 계획대로 가꾸어나갈 수 있었다. 사냥꾼은 21세기적 인간상이다. 이제 사회는 각자도생으로 특징지어지는 사냥터가 되고, 개인은 끝없이 펼쳐진 사냥터에서 생존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사냥꾼이 되느냐, 사냥감이 되느냐가 21세기 우리 시대의 자화상인 셈이다. 바우만은 자신의 저서 '모두스 비벤디'(2007)에 이렇게 적었다.
"끊임없이 계속 사냥에 참여하는 삶이 또 다른 유토피아라면, 그것은 (과거의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끝이 없는 유토피아다. 사실 정통적 기준으로 보면 기괴한 유토피아다. 본래 유토피아는 고생이 끝날 것이라는 약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이에 반해 사냥꾼의 유토피아는 고생이 결코 끝나지 않는 꿈이다."
초개인화에 대한 경영학적 발견이 개인의 내면에 잠재하는 다양한 욕구의 충족을 가능하게 한다면, 사회학적 시선은 그 충족의 유토피아가 끝없는 고생으로 점철된 '기괴한 유토피아'임을 자각하게 한다. 문화적 뉴노멀로서 초개인화의 실제 모습은 이러한 낙관과 비관 사이의 어디쯤엔가 위치할 것이다.
초개인화 시대를 살아가려면현재 AI의 도도한 물결을 거부할 순 없다. AI가 인류의 삶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한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초개인화는 이 AI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초개인화 시대를 맞아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초개인화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한편에서 초개인화 시대의 인간은 더욱 다양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 초개인화 시대의 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을 놓고 기업 간, 국가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이 과정에서 개인은 점점 더 경쟁의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소비의 풍요와 경쟁의 불안'은 초개인화 시대의 두 얼굴을 이룬다. 초개인화로 향하는 진화를 거역할 수 없다면 그 진화의 결과에 대한 대처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둘째, 초개인화의 문제는 곧 AI의 문제다. AI의 발전은 미래가,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포스트휴먼 시대'로 나아갈 가능성을 암시한다. 발명가 레이 커즈와일은 저서 '특이점이 온다'(2005)에서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의 융합 시점을 특이점으로 정의한 바 있다. 커즈와일은 2045년 특이점을 거친 이후에는 기술이 인간을 추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 우리 인류는 이런 포스트 휴먼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숙고해야 할 것이다.
성지연●에세이스트●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동 대학원 국문학 박사●저서: '어른의 인생 수업', '다시 만난 여성들'
성지연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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